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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삶

5월 산책, 슬리퍼만 챙기면 되는 순간들

by 우리가 사는 세상 2025. 5. 14.

 
 
지워지지 않는 코드 하나 때문에 며칠을 허비했다. 광고 위치 하나 바꾸고 싶었을 뿐인데, 어디선가 이상한 구조가 튀어나오고, 제목이 사라지고, 사이드바 껍데기가 달라붙었다. 고치면 고칠수록 복잡해졌다.
마음이 텅 비는 날이었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글 하나 쓰기도 벅찬데 HTML 구조랑 싸우고 있는지.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었지, 개발자가 아니었는데.
그날 나는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동네 골목, 조금은 허술한 담벼락, 철쭉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녹색들. 그냥 걷는 동안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5월은 그런 달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햇살이, 바람이, 공기가 내 편이 되어주는 시간.
지워지지 않는 코드도, 엉킨 스킨 구조도 잠시 내려놓고 걷는 이 시간이, 어쩌면 내가 진짜 필요한 회복일지 모른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글은 써지지 않았지만 조금은 괜찮아진 내가 있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슬리퍼를 신은 내가 속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