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날이 있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도 아니지만 그냥 오늘 할 수 있는 걸 모두 써내려간 기분이 드는 밤.
체크리스트가 전부 지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속에 남았던 일들을 조용히 정리하고 내려놓은 그런 밤 말이다.
쌓인 생각도 있었고, 한동안 미뤄뒀던 감정도 있었고, 해내야 할 것들과 마주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모든 걸 글로든 마음으로든 오늘은 끝까지 따라가 봤다는 느낌.
그래서 오늘 같은 밤은 조용히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잠든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조금 대견해진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오늘도 내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붙잡아 본 거니까.
이제서야 하루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무언가를 해낸 날보다, 무너지지 않고 버틴 날들이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아무도 몰라도 괜찮다. 이 하루를 살아낸 내가 스스로 알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써온 시간, 내가 기록한 마음, 그게 곧 나의 하루라는 걸 잊지 않기로 한다.
하루를 다 써내려간 느낌이 드는 밤, 나는 오늘도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넨다.
글쓰기의 마음